공연예술스쿨 뉴스레터 02
  • 작성일 2018-06-04
  • 작성자 최승연

연출전공의 첫 실습무대, 연극 <바다로 가는 기사들Riders to the Sea>

2018년 1학기 공연예술스쿨 프로덕션 시즌에는 예년과는 다른 공연 한 편이 무대 위에 올라갔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이 1903년에 집필한 후 1904년 더블린에서 초연되었던 <바다로 가는 기사들> 공연이 그것이다. 3학년 연출전공 ‘단막연출프로젝트’ 수업의 일환으로 시도된 이 작품은 싱이 직접 아란 군도에 방문하며 ‘아일랜드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탐구한 결과물이다. 당시 유럽의 메트로폴리스인 파리의 대척점으로서의 아란섬이, 아일랜드의 원시적인 로컬리티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보고 이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하였다. 물론 그 목적은 세계 문학에서 경쟁력 있는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싱의 작품은 식민지 조선의 극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으로 유치진과 함세덕은 싱의 작품이 지닌 아일랜드의 향토성을 조선적인 것으로 번역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바다로 가는 기사들> 공연은 다음과 같은 이슈를 정면으로 수용해야 했다. 첫째, 작품 속 아일랜드적 정체성을 2018년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둘째, 이 작품의 핵심인 ‘로컬’적 요소와 ‘보편적인 것’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셋째, 국내 무대에서 잘 알려진 작품을 청강 공연예술스쿨만의 문법으로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가. 착실하게 연출전공 수업을 받으며 3학년 과정에 들어간 연출전공생 구주희, 박미주는 이 문제들에 직면하고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 결과물은 다음과 같았다.

 

‘그 이후’ 모리야는 삶을 잘 살아냈을 것이다
2018년 5월 23일(수) 공작소 306호에서, 저녁 11시에 먼저 올라간 구주희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은 모리야의 미래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하나 남은 아들 바틀리마저 바다에서 잃은 모리야가, 객석을 가로질러 난 길을 통해 새로운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결말은 구주희 연출의 핵심 장면이었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 모두를 바다에 잃어버린 모리야가 두 딸과 함께 살아내야 했던 미래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처참한 비극 이후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던 모리야는 어떤 상태였을까’라는 질문이 견인한 결론이었다. 모리야가 슬픔을 터트리는 대신 안으로 삭이며 감내하는 스타일로 표현된 것은 구주희 연출의 특징적인 면모로서, 자신의 연출 콘셉트를 형상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였다. 이에 따라 모리야는 결국 ‘더 이상 기도할 것이 없는’, 삶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린 일종의 체념 상태로 들어가는데 그것이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명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한 늙은 여인의 쓸쓸한 뒷모습으로 초점화 됨으로써 애잔하고 비극적인 정서를 돋보이게 했다.

 

요컨대, 구주희 연출은 이 작품을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텍스트로 전유하고 그것을 지금/여기에서 보편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지점으로 부각시켰다. 이를 위해 무대를 과감하게 확장하고 객석 사이에 등·퇴장로를 만든 것, 집중감 있는 조명과 무대 활용 방식은 구주희 연출 버전의 큰 미덕이었다. 이제, 긴 호흡으로 진행해야 하는 2학기 수업 ‘장막연출프로젝트’를 위해 배우와 스텝이 더욱 긴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한다는 과제를 충실히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성적이고 개별적인 인물들
2018년 5월 24일(목) 공작소 301호에서 두 번째 버전, 박미주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이 공연되었다. 박미주 버전의 특징은 인물의 표현방식에서 찾을 수 있었다. 301호는 구주희 연출이 사용했던 공작소 306호에 비해 많이 협소하기 때문에, 공간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박미주는 따라서 텍스트 안으로 더 깊이 침잠하여 인물들에게 하나하나 색을 입히고, 이 점을 극을 더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초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연출 방향에 따라 작품에서 후경화되어 있는 두 딸들, 캐슬린과 노라가 개성을 갖게 되었고 모리야 역시 감정을 토로하는 인물로서 다소 격정적으로 표현되었다. 캐슬린과 노라는 바틀리를 포함한 남성들보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비중이 크지만 작품의 주된 사건이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모든 아들들의 비극적 죽음에 초점화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두 딸들은 사건에 반응하는 존재로서만 기능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박미주는 죽은 아들들뿐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딸들 역시 모리야의 자식이며, 따라서 여성-딸들의 목소리 역시 주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다소 신경질적이고 성마른 캐슬린, 어린 아이와 같은 노라의 분주함은 딸들이 주요 사건의 외부에서 모리야를 위로하는 존재로 제한되기보다 ‘살아있는 자식’으로 인식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딸들의 부활은 모리야에 대한 해석 역시 변화시켰는데, 비극을 초극하는 존재라기보다 현 상황에 솔직하고 가감 없이 반응하는 인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공연에 투입되는 연출가는 언제나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한다는 숙명을 갖고 있다. ‘주어진 조건’은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상황 안에 놓여진다. 비교적 제약이 많았던 박미주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개성적인 인물들로 정면 돌파하려고 했던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차후의 작업에서는 더 기민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구주희, 박미주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선배들의 작업을 자발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나선 1학년과 2학년들의 협업이 가장 빛을 발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이 지속될 때 청강 공연예술스쿨 자체의 역량 역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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