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현문화재단 ‘향기로운 책 시리즈’ 두 번재 이야기「구비치며 합류하다 : 화가 김차섭 김명희의 향기로운 삶」 출간
  • 작성일 2016-01-14
  • 작성자 Chungkang

 

청현문화재단 향기로운 책 시리즈두 번재 이야기

구비치며 합류하다 : 화가 김차섭 김명희의 향기로운 삶출간   

청현문화재단에서는 김차섭, 김명희 화가의 삶을 20152월부터 9월까지 총 14회에 걸쳐 뉴욕 소호와 강원도 내평리에서 인터뷰 취재하고, 이를 기반으로 향기로운 책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로 구비치며 합류하다 : 화가 김차섭, 김명희의 향기로운 삶(청강문화산업대학교 출판부)을 출간했다.

미술평론가 김준기는 뉴욕과 춘천을 오가며 일상의 미시사와 전지구의 문명사를 관통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펼치고 있는 예술가 부부 김차섭, 김명희 두 어른께서 이렇듯 섬세하고도 장대한 서사라고 두 작가의 삶을 추천했다.

청현문화재단을 이끌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진행하는 이수형 이사장은 향기로운 책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를 출간하게 된 까닭에 대해 이 책은 두 화가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비평서가 아니다. 시리즈 제목처럼 두 작가의 삶이 풍겨내는 자연스러운 향기를 담아내고 있다. 삶과 예술의 동지로 그분들이 걸어온 길 어귀어귀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보여주신 작업 세계와 인생의 풍경이 소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삶 속에 온전히 한 세계가 담겨 있는, 산만한 분주함보다는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분들만이 가질 수 있는 뚜렷한 질서의 힘을 강하게 느꼈다. 40년 이상을 부부작가로 삶과 작품의 궤적을 같이, 또 다르게 한 분들도 드물거니와 두 분처럼 고스란히 한국과 미국, 두 시공간에서 미술계를 밟아온 부부는 더욱 더 드물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능할 수 있는, 그러나 흔치 않은 두 분 만의 공명을 담아내고 싶었다라고 출간의 소회를 밝혔다.

 

책 제목처럼 김차섭, 김명희 작가의 삶은 일제시대, 한국전쟁, 4.19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구비를 돌아간다.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된 두 작가의 삶은 대학 영화 동아리에서, 이화여고에서 인연으로 스쳐가다 뉴욕 프랫 대학에서 마침내 합쳐진다.

두 분은 어디엔가 정착하는 것 보다 노마드의 삶을 선택했다. 어쩌면 이런 선택은 자의가 아니라 DNA의 끌림같은 거라 생각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자라면서 논과 산길에 굴러다닌 신라시대의 토기를 주워 모으며, 기마민족의 기억과 만났다. 그리고 늘 세계의 문명사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을 작품에 담아낸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 기마민족의 DNA를 느끼게 된다. 김명희 선생은 유년시절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과 영국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부유하듯 떠돌았던 그 기억은 정주보다는 유목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술교사가 되고나서 다시 뉴욕으로 떠나고 싶었던 것 역시 선생님에게 있는 노마드의 유전자 때문이다. 이 유전자적 끌림이 두 사람을 함께 하게 했다. 두 화가이자 40년을 함께 산 부부가 털어놓은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구비치며 합류하다 : 화가 김차섭, 김명희의 향기로운 삶에 가득하다. 책의 말미에 두 작가의 주요 작품과 연보도 함께 수록했다.

 

우리는 유목인인 거지. 달리는 기차처럼…”

어디엔가 정착하기 보다 두 부부가 선택한 노마드의 삶을 담다.

 

김차섭과 김명희에게 한국과 미국이라는 국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첨단 유행과 예술이 숨 쉬는 뉴욕 소호와 오로지 자연과 마주 대하는 강원도 내평리가 있을 뿐이다. 소호와 내평리, 내평리와 소호는 국가가 아니라 공간이다.

김차섭과 김명희는 각각 다른 길을 걸어 여행을 했다. 태어난 장소도, 시간도 달랐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아주 우연히 여행 중에 스쳐가기도 했다. 1969년 독립문의 작은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고, 1973년 이화여고에서 교사로 만났고, 1974년 뉴욕 프랫대학에서 만났다.

구비치며 합류하는 삶의 여정은 1976년부터 함께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작업을 하면 다른 사람은 작업을 접어두고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다. 긴 시간의 갈등은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기도 했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작업을 묵묵히 지켜보며 후원한다.

 

여름에는 비워두고 겨울에는 가서 작업을 하고, 그렇게 장소를 바꿔가며 작업하는 것.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게 아니라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생활 같아. 유목민족처럼 이동하는 거지. 우리 부부가 둘이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부분이 맞아서였을 거야. 항상 떠나는 것에 대해 동질감이 있었으니까. 서로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을 즐거워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 부부가 함께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 그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 ”

김차섭 인터뷰 중

 

한번은 어머니가 너희 집이 어디니?’ 하고 물으셔 그건 우리가 계속 여행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보시는 거야. 어머니 보시기에는 우리가 집이 없는 거야.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집이 꼭 있을 필요는 없지.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 어머니께서 알고 계신 집하고 다른 거지. 우리는 집이 마음속에 있다고 보니까. 어미니나 다른 사람들은 농경민족처럼 마을이 있고 집이 있고 농사짓는 땅이 있고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는 유목인인 거지. 달리는 기차처럼.. ”

김명희 인터뷰 중

 

김차섭은 역사와 진리를 탐구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상대에게 전하기를 즐겨한다. 그림의 스타일도 격랑의 구비를 넘나들 듯 변화했다. 그러나 변화의 중심에는 자아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 있다.

김명희는 사람을 본다. 내평리에 정착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칠판에 그 아이들을 그려 독특한 칠판그림을 완성했다. 1997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에서 만난 사마르칸트의 고려인들 역시 칠판 안으로 옮겨졌다. 그의 작업은 미술평론가 김준기의 표현대로 인류학으로서의 예술이다. 김명희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의 얼굴에는 인류의 문명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차섭, 김명희 두 화가는 소박하고, 겸손하며 무엇보다 따뜻하다. 뉴욕 소호 거리에서 만나건, 아니면 내평리의 녹음 속에서 만나건 간에 두 사람은 그저 김차섭, 김명희일 뿐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이다.

 

작고 향기롭게 사회에 공헌하는 청현문화재단

청현문화재단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건학 이념인 인간사랑, 자연사랑, 문화사랑의 뜻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고자 청강학원 초대 이사장인 현재(玄哉) 정희경 님이 사재를 출연하여 설립한 문화재단이다. 청현문화재단은 문화를 향기롭게 전파할 수 있는 인물과 주제를 조명하는 <향기로운 책 시리즈>와 우리 사회가 또 하나의 좋은 이야기 틀을 갖추길 바라며 여성원로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여성생애사 구술채록 총서> 발간사업을 하고 있다.

청현문화재단 이수형 이사장(청강문화산업대학교 미래원장)청현문화재단의 도서발간 사업을 통해 향기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귀감이 될 만한 분들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그분들이 들려주는 삶의 소중한 가치와 지혜가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인물 소개

 

김 차 섭(1940년생)

 

화가, 일본 야마구치에서 태어나 1944년 경주로 이주했다. 1963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ROTC로 전방에서 근무한다. 군 제대 후 1967년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5회 파리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선정되어 파란을 일으킨다. 1968년 이화여중 미술교사로 근무하다 1969년 이화여고 미술교사로 자리를 옮긴다. 젊은 전위예술그룹 AG그룹 창립에 참여하고, 1970년 도쿄판화비엔날레, 1971년 상파울로비엔날레 등에 참여한다. 1974년 김명희의 도움을 받아 이화여자고등학교 류관순 기념관의 <The Moment of Action>를 작업한다.

1974년 롤펠러 장학 재단의 지원자로 선정되어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에 입학한다. 섬세한 에칭 작품으로 미국 화단의 주목을 받아 여러 전시회에 초청되고, 뉴욕현대미술관, 브루클린 뮤지엄 등에 작품이 소장된다.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판화에 쓰이는 화공약품의 영향으로 상이 두 개로 맺히는 병이 걸리고, 모든 작업을 포기하고 요양에 들어간다. 건강이 회복되자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하여 1990년 강원도 내평리의 폐교에 정착한다. 김차섭은 작품에 인간 문명의 근원성을 탐구하며 동시에 서구 중심적 시간을 비판한다. 항상 변화하고, 고민하며 새로운 작업을 탐구하는 김차섭의 작품은 미국 국회도서관, 브루클린 박물관, 버지나아 미술관, 체이스맨하튼 은행, 어두번 협회, 데이비슨 대학, 국립현대미술관, 환가미술관, 호암미술관, 한림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김 명 희(1949년생)

 

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과 영국에서 성장했다. 1972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이화여교 미술교사로 근무하다 같은 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김차섭을 만난다. 1974년 김차섭과 함께 기념비적 유화인 <The Moment of Action>를 작업한다. 1975년 도미, 1976~78년 프렛 인스티튜트 대학원과정을 수확한다.

1976년 김차섭과 결혼한 뒤 뉴욕 소호에 정착한다. 결혼 후 김명희는 전업작가의 생활을 접고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직장생활을 거쳐 1979년 패셥숍 피놀라를 운영한다. 사업으로 생활이 안정되자 다시 작업을 하게 되고, 1972년 괴테연구소의 첫 개인전 이후 두 번째 개인전을 1987년 원화랑에서 열게 된다. 199015년간 살던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내평리의 폐교에 터를 잡는다. 그곳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길어 올린 작품을 통해 상실뿌리 뽑힘(dislocation)’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보여주었고, 이 작업을 소개한 1995년 원화랑의 개인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국립현대미술관, 환기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림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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