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스쿨 뉴스레터 03
  • 작성일 2018-07-02
  • 작성자 최승연

2018-1 실습공연, 긴 호흡으로 승부하라

 

청강 공연예술스쿨에서는 2018년 1학기 실습공연작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연극 <사천의 선인>을 선정했다. 두 작품 모두 배우와 스태프의 길고 밀도 있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바, 공연예술스쿨 전체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현재 국내 공연시장의 성장이 다소 지체되는 데 비해 매년 쏟아지는 연극·뮤지컬 분야 전공생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게다가 날이 갈수록 공연계로 진출하려는 지망생들의 기본 역량이 향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긴 호흡과 높은 밀도가 필요한 작품에 도전해야 할 이유가 분명했던 것이다. 공연예술스쿨 교수진은 학기 초에 두 작품에 대한 통합오디션을 진행하고 학생들을 각 특장점에 맞게 배치,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 적재적소에서 제대로 발휘되고 자라날 수 있도록 고려했다.

 

또한 두 작품은 국내 뮤지컬과 연극의 장 안에서 각각 ‘고전’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어서 청강 실습공연만의 특색이 분명히 표현되어야 한다는 또 다른 목표점을 만족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연출 콘셉트는 ‘동시대적인 소통’이 가능한 공연을 지향한다는 공연예술스쿨의 초목표를 적용하여, ‘고전의 현대화’라는 틀 안에서 마련되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객석과 무대가 하나로

 

숨 극장에 올라간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6월 12일~16일까지 오픈 리허설과 본 공연을 포함하여 총 9회 공연되었다(연출 김준태, 학생연출 구주희, 김단비). <레미제라블>은 지난 2015년 1학기에도 실습공연 레퍼토리로 공연된 바 있었는데, 이번 2018년 1학기 버전은 독특한 무대 활용 방식을 선보이며 이전 공연과 차별화를 꾀했다. 극장에 들어서면, 배우들이 처음부터 무대 위에 모두 노출된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이고, 심지어 배우와 관객이 함께 앉는 의자까지 마련되어 있어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마치 객석의 일부를 무대 위에 놓고 그곳에 앉은 관객들을 작품의 특정 지점에서 드라마의 일부로 활용하는 뮤지컬 <머더 발라드>처럼, <레미제라블> 역시 공간 활용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관객과 배우가 경계를 나누지 않고 <레미제라블> 속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한다는 연출 콘셉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정확히 구현되었는데, 기실 이 방식은 전체 배우들의 높은 집중력이 전제되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장면 전환이 많은 <레미제라블>과 같은 큰 규모의 작품은 최대의 환영(illusion)을 창출하기 위해 프로시니엄 무대의 백스테이지와 윙(wing) 공간을 활용, 세트 전환과 배우의 등퇴장을 가장 용이한 방식으로 최적화시키지만, 이번 청강의 <레미제라블>은 극장의 물리적인 조건을 최소화하고 대신 등퇴장을 하지 않는 전체 배우들의 신체훈련에 집중했다. 따라서 배우들은 약 3시간 동안 자신이 맡은 장면은 물론이고 동료 배우들의 장면 및 코러스에 집중하며 작품 전체를 한 호흡으로 처리함과 동시에 ‘관찰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숨 극장의 공간적 제약을 연출 콘셉트로 보완한 전략이 돋보였다.

 

한편, 근본적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흥미로운 이유는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작 소설 <레미제라블>의 방대한 서사가 뮤지컬에 최적화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물들 각자의 사연 중심으로 드라마가 압축되고, 압축된 드라마의 빈 공간을 송스루(Song-Through)로 채워나가며 정서를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레미제라블>은 배우들이 그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연기를 통해 각 넘버 안의 정서와 드라마를 제대로 표현해야 가능한 작품이 된다. 청강 뮤지컬연기전공 학생들이 대거 포진했던 <레미제라블>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성 인물들을 전부 원 캐스트로 두고 장발장과 자베르, 마리우스와 앙졸라가 각각 이끄는 1막과 2막의 집중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특히 자베르와 앙졸라는 2018년 1학기에 군 제대 후 학교로 돌아온 복학생들이 맡아 공연 기간 내내 진지한 접근방식과 숙성된 연기를 보여 주었으며 이를 통해 재학생들과의 협업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 주요 남성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인 여성 인물들, 즉 팡틴, 코제트 역은 트리플과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되어 다채로움을 첨가하였으며 에포닌과 테나르티에 부인 역을 맡은 배우들은 인물 자체의 매력을 발산시키는 연기 스타일로 큰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론적으로 2018년 1학기 실습공연 <레미제라블>은 현대가창과 벨칸토를 아우르는 청강 공연예술스쿨의 입체적인 보컬 수업 방식과 기본기에 충실할 것을 목표하는 연기 수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프로시니엄 무대를 벗어난 실험적 도전이 더 이상적인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우리의 과제가 남아 있다.

 

 

지금 이 시대로 소환된 브레히트

두 번째 실습공연 레퍼토리는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었다. <사천의 선인>은 6월 13일~16일까지 공작소 3층 블랙박스 극장에서 총 4회 공연되었다(연출 민새롬, 학생연출 채예솔, 조아현).

 

이번 청강의 <사천의 선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무대화 방식’이었다. ‘1943년에 초연된 작품을 2018년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무대화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공연을 견인했다. 사실 브레히트의 작품은 독일 내에서 교과서적인 지위를 갖고 있으며, 국내 무대에서도 다양한 버전으로 재탄생하면서 고전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주는 무게감을 쉽게 벗어버리기 힘들다. 가령, 오랜 시간 동안 기획·숙성시켜 만든 이자람의 판소리 <사천가>가 국내뿐만이 아니라 독일 현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작품의 성공적인 재탄생을 가능케 했으나, 브레히트와 전통예술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고전의 지위를 얻을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브레히트의 연극무대로의 소환은 명확한 목표와 기획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오랜 시간동안 극본을 다듬고 학생연출과 디테일한 지점까지 상의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낸 민새롬 연출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더불어 배우 전체를 이끄는 두 고학년 배우장의 역할 및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함께 움직였던 전체 배우팀, 새로운 아이디어 제안에 주저하지 않았던 무대팀의 창의성은 작품 전체에 큰 에너지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이번 <사천의 선인>은 이렇듯 각 분야의 ‘합’이 잘 맞아떨어진 공연이었다고 총평할 수 있겠다.

 

<사천의 선인>은 총 러닝 타임이 4시간에 육박했으나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하면서 러닝 타임의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선하게 살 수 있는가, 만약 선하게 살 수 없다면 개혁의 대상은 인간인가 구조인가’라는 브레히트의 문제제기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소외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풍부하게 활용함으로써 재기발랄함의 수위를 높였다. 각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부제를 노출하고, 장면의 드라마와 관련성이 낮은 음악을 사용하여 관객의 심리를 작품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야 한다는 서사극의 규율들은, 무대 위에 설치된 6개의 스크린과 노래방 장면으로 구현되었다. 부제가 제시되는 스크린은 영상을 펼쳐놓는 도구로도 활용되었는데, 작품 초반에 무대에 직접 등장했다가 줄곧 영상 안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세 명 신들의 연기 공간으로 전환되는 방식이 가장 흥미로웠다. 영상팀은 이 장면을 위해 사전에 분초 단위로 연기 장면을 촬영, 실제 공연에서 상대 배우와 정확하게 연기 타이밍을 맞출 수 있도록 조율했다. 7개의 스크린은 패션쇼장의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연기 공간 양 측면의 객석에서 모두 잘 보이도록 두 방향으로 설치되었으며, 신들의 장면 외에도 각 장면의 분위기를 압축시키는 흑백의 이미지를 활용,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심리적 거리감을 조절했다. 한편, 장과 장 사이에 몇 번 반복적으로 삽입된 노래방 장면은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사이키 조명과 무대감독이 갖고 들어오는 노래방 마이크를 통해 B급 정서로 진행될 것임을 애초에 시사했다. 배우가 노래를 잘 불러서 박수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객이 작품 속 셴테와 그녀를 둘러싼 극적 상황을 조망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는 목표점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은 옳았고 또한 효과적이었다.

 

 

이번 <사천의 선인>은 내실 있게 성장하고 있는 연극영상전공생들의 현재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끝까지 작품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단일한 예술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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