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경이사장님]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세요”
  • 작성일 2014-12-01
  • 작성자 Chungkang

다음은 여성신문사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만남 / 학교법인 청강학원 정희경 이사장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세요”
‘문화산업’ 개념 도입해 전문인력 양성 사재로 청현문화재단 만들어 여성의 삶 복원 이화여고 최연소 교장으로 부임해 12년간 재직 삶을 살찌우고 사회를 풍요하게 해야 ‘쓸 데 있는 교육’

 

“‘불구하고’ ‘in spite of’ 철학을 가졌어요. 내가. 젊은이들이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지금보다 훨씬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용기 있게 살아낸걸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나무라지 말고, 시원치 않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산다면 보람을 찾아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젊은이들이 돼 주었으면 좋겠어요.”여든을 넘긴 원로 교육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등이 왜 켜져 있는지부터 물었다. 인터뷰 사진 촬영 때문이었는데 대낮에 전깃불 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가 보다. 평소 그가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물음이었다. 또 이름난 사립대학교 이사장이자 국내 굴지의 기업 창업자의 아내인 그이기에 낯선 물음이기도 했다. 정희경(82) 학교법인 청강학원 이사장. 3년 전 다친 다리 때문에 아직 거동이 불편해 보였지만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 교육 현실에 대한 쓴소리를 할 때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메시지는 묵직했다.“잘못된 것은 왜 그렇게 안 변하는지 모르겠어요. 시험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게 경직된 것이 수십년, 아마 백 년은 넘었을 걸.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좀 더 유연하게 할 수는 없는지, 그런 걸 연구해서 내놓는 사람은 왜 없는지 안타까워요.”

1971년 최연소 이화여고 교장 취임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정 이사장은 모교인 서울대 사범대 교수와 성균관대 여학생처장을 지냈고, 1985년에는 현대고등학교 초대 교장, 1990년 계원예술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교육해 온 그이기에 입시를 비롯한 교육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하게 전해졌다.

 

“시험만 치면 다 잊어버릴 쓸데없는 교육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데 취직을 하면 만족하나요? 그것도 아니란 말이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만족감이 있어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잖아요.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답게 뛰어놀고 그렇게 노는 가운데서 삶의 즐거움을 배워요. 그래야 공부하는 것도 즐겁죠. 우리나라는 공부하는 게 징그러운 고역이 됐잖아요. 공부를 아무리 해도 행복을 누리질 못해요. 자기의 삶을 보다 더 살찌울 수 있고, 그것이 밖으로 나가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교육, 그런 ‘쓸데있는 교육’을 해야죠.”

 

‘문화산업’과 대학 교육의 만남

정희경 이사장은 1996년 개교한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초대 이사장이다. 청강문화산업대학은 정 이사장의 남편인 고 이연호 남양알로에(현 유니베라) 전 회장이 설립한 것으로 교명인 ‘청강(靑江)’은 이 전 회장의 아호(雅號)였다. 조부 3형제의 교육사업 의지를 살리고자 오랜 시간 학교 설립을 위해 애썼던 이 전 회장은 개교를 몇 달 앞둔 1995년 9월에 암 선고를 받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이에 정 이사장은 학교의 이사장으로, 딸 수형씨는 학장으로 취임해 이 회장의 유지를 이어나갔다. 정 이사장은 처음엔 학교 설립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젊은 날 사립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사립학교 경영이 “살얼음판을 걷듯 노심초사의 지경을 헤매야 하는 무서운 질고”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설립 대신 문화재단을 만들라고 권했지만 이 회장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1996년 3월 3개 계열, 9개 학과 720명의 입학생을 받은 청강문화산업대학은 개교 18주년을 맞은 올해에만 980명의 전문학사와 99명의 학사를 배출했고, 14개 모집 단위에서 1285명의 신입생을 모집했다. 국내 유일의 문화산업 특성화 대학으로 애니메이션과, 만화창작과, 푸드스타일리스트과 등을 국내 최초로 개설한 청강대학은 콘텐츠스쿨, 푸드스쿨, 패션스쿨, 뮤지컬스쿨, 모바일스쿨 등 5개의 스쿨로 특화된 문화산업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지금에야 한류 등 ‘문화’가 21세기 산업의 대표 키워드가 됐지만 문화와 산업을 연결시키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정 이사장 부부는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이라는 새롭고도 생소한 분야에 도전했다.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이 저희 학교에 처음 도입됐죠. 문화를 즐길 줄은 알지만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는 않았거든요. 문화 자체로만 있으면 퍼져나갈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봐야만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져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문화산업이라는 말을 만들어 썼어요.”

교육자로서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국가의 격을 높이는 데 문화 이상의 것이 없다”며 청강 대학이 앞으로도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참여의 폭을 넓히면서 문화산업에 전적으로 올인하는 대학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는 일하는 엄마”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후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교육심리학 석사를 수료하고 1957년에 귀국한 정 이사장은 유학을 떠나기 전 약혼했던 이연호 회장과 이듬해에 결혼했다. 장녀 수형씨가 태어난 1960년부터 평생을 ‘워킹맘’으로 살아온 그는 “여성이 전문직을 가지고 아이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은 요즘보다는 살림을 도와줄 인력이 풍부했던 당시가 더 수월했다”고 회상했다. 덕분인지 정 이사장은 딸 수형씨와 아들 병훈씨 둘 다 모유 수유까지 하며 키울 수 있었다. 아이들과 많이 접촉하는 것이 나름의 교육 방침이었다는 그는 강의나 방송, 회의를 다닐 때면 늘 아이들과 동행했다. ‘일하는 엄마’를 보며 잘 자라준 수형씨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개교부터 학장과 총장, 미래원 원장을 맡으며 성공적으로 학교를 이끌어 오고 있고, 아들 병훈씨는 아버지가 창업한 남양알로에(현 유니베라)를 이어받아 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최고경영인(CEO)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체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가 하는 일을 아이가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아이들 4살 무렵부터 함께 다녔지요. 시민단체 강의 때는 간사들이 돌봐주기도 했고, 세미나나 방송 녹화 때는 아이들이 얌전히 앉아 듣기도 했어요.”

‘워킹맘’으로 살아온 정 이사장은 2011년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청현문화재단’을 통해 우리 사회 여성들의 활약을 기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나 연극계 대모 이병복 무의자 박물관장 등 여성 원로들의 구술 채록과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향기로운 도서’ 사업 등이다. 청현문화재단은 청강(靑江) 이연호 회장과 현재(玄裁) 정희경 초대 이사장의 호의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여성인력이 한국 사회에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로 보여주기 위해 이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여성들의 활약이 사회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되고 있어요. 앞으로 지속해 나갈 생각이에요.”

 

나눔은 생활

재단을 통한 사회사업 이외에도 정 이사장은 일생 나눔을 ‘생활처럼’ 실천해왔다. “거지 한 사람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없었던 어머니 덕분인지 나도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는 정 이사장은 2002년 70세 생일을 ‘나눔의 잔치’로 열었다. 12곳의 기관에 약 8억원의 돈을 나누어 기부한 그는 먼저 두 자녀에게 의견을 물었다. 의식주에 필요한 최소한만 남기고, 유산이란 명목의 상속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자 이수형 원장과 이병훈 사장은 도리어 기뻐하며 어머니의 뜻을 따라줬다. 정 이사장은 “자랑스러운 자식들”이라고 감사해했다.

 

“나는 목돈을 모아서 기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년이면 1년 동안 내가 가용할 금액 가운데 최대한 알뜰하게 아껴 살고 나머지는 모두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남에게 나누어 주고 후회하지 말라고 하시며, 베풀고 후회하면 아니 주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셨어요.”

정 이사장의 기부는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여성운동, 사회사업, 교육, 정신건강 운동, 문화재 보존 사업, 구제활동 기금 등 그때 그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기부한다. 거실 등 켜는 것도 아낄 만큼 근검절약하는 생활 습관은 “나눔이 평소 생활이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정희경 이사장은

1932년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강원룡 목사를 만나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기독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교육심리학 석사를 수료하고 한국에 돌아와 이화여대, 숙명여대에 출강했다. 성균관대 여학생처장, 서울대 사범대 교수로 근무하다 1971년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1971년부터 73년까지 첫 남북적십자회담의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1985년 현대고등학교 초대 교장, 1990년 계원예술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재단법인 일가재단 후원회 회장, 대한YWCA 후원회 이사장을 맡았다.

 

 

기사 원문 보기: http://www.womennews.co.kr/news/78098#.VHwh6pywd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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