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유희적 인간이 온다 : 놀아라, 놀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 작성일 2012-04-12
  • 작성자 Chungkang

호모 루덴스, 유희적 인간이 온다.

놀아라, 놀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에르제의 만화 <땡땡의 모험>(우리나라에서는 솔 출판사에서 전권 출간)이 있다. 23권(애니메이션 편집본 포함하면 24권)으로 발표된 모험만화의 최고봉이다. 그런데, 이 만화를 보면서 늘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주인공 땡땡, 소년기자라고 하느데 나는 만화에서 땡땡이 취재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하는 장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내 기준으로 보면 땡땡은 늘 놀기만 한다. 여행길에 위험에 빠진 에피소드도 많다. 한참을 보다 느닷없이 드는 생각. “너는 언제까지 놀기만 할래?” 덜컥 불안해 진다. 왜 땡땡은 매일 놀까? 일은 안하나? 참, ‘소년’ 기자라고 했는데, 그럼 공부해야 되잖아?

 

 

너는 언제까지 놀래?

30대 이상의 세대는 노는 것을 ‘죄악시’하는 세상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가장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 “놀지 말고 공부해라”였다. 내가 진짜로 놀다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뭔가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책을 보고 있어도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은? 당연히 노는 일이다. 명화극장을 보는 것은? 물론 노는 일이다. 역시 30대인 나도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신의 기억을 화인처럼 안고 있는 선배세대와는 자라온 환경이 달랐다는 점이다. 경제개발의 혜택을 수혜받기 시작한 세대이며, 대중문화를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세대였다. 중, 고등학교 시절 FM 라디오와 LP로 음악을 들었고, 뮤직비디오를 LD로 보았다. 불법복제된 비디오로 명작을 보기도 했고, 극장을 다니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오락실은 동네마다 있었고, 만화책도 풍부했다. 때론 회현동 상가를 뒤져 일본 애니메이션을 구해 볼 수도 있었다. 나름대로 잘 논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 첫 페이지에 실려 있던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은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나는 늘 놀다 보면 뭔가 뒤가 캥긴다. ‘민족중흥의 사명’을 띄고 태어난 사람이 이렇게 놀면 되겠어? 역사적 사명을 생각해 보라고! 아주 징그러운 기억의 뿌리다. 우리나라에서 좌와 우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지만, 좌파가 되었건, 우파가 되었건 어느 쪽이건 제대로 한 판 놀려는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죄악시하고 터부시 했다. 손가락질하고 화인을 쳤다. 에이, 놀기 좋아하는 놈. 놈팽이 같은 놈. 벌어먹지 못할 놈. 의식이 부족한 놈. 참 팍팍하다. 노는 것이 그렇게도 잘못된 일인가?

놀이는 퇴폐적인 죄악이 아니다.

 

신문의 기사를 읽다가 노는 것에 대한 찜찜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홍은택 기자의 <한겨레> 2006년 1월 13일자에 실린 글이다.

 

“노는 것은 항상 죄악시됐다. 놀면 어쩐지 맘 한 구석이 불편하다. 노는 것은 일하는 또는 공부하는 중간의 일탈된, 주변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건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가, 오락을 뜻하는 recreation은 다시 만들어낸다는 뜻. 다시 뭔가를 만들어낼 힘을 충전하기 위해 논다는 뜻이다. 우리는 개미와 거북이를 떠받들고 베짱이와 토끼를 멸시한다. 우리는 일하는,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인 호모 파베르 (Homo Faber)다. 일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한다고 배운다. (중략) 보통은 일이 생활비를 벌거나 축재 또는 출세의 도구다.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똑 같은 일의 기계적 반복이거나 때로는 눈치를 봐야 하고 비굴해지는 것도 참아야 하는 노역일 뿐이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몇몇을 위한 이데올로기이며 다수를 부려먹는 소수의 논리다. 하지만 그다지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일을 하지 않고 노는 사람들을 더 지탄하는 모습을 흔히 발견한다. 시간을 헛되이 쓰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자식들에게는 맘껏 놀아보라고 하지 않고 시켜서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그러니 인생이 뻔해진다. 개성을 상실한 채 사회적 기능과 의무의 일부로 살다 간다.”

 

만세!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에게는 쉬는 것도, 노는 것도 모두 일하기 위한 충전의 하나다. 그렇게 일만 죽도록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자아의 실현? 글쎄, 아닌 것 같다. 아내는 나를 보고 일중독자라고 말한다. 집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고 있으면, 타박이 심하다. 그러면서 “지금이야 아이들이 어리니까 함께 놀자고 하지, 나중에 아이들 크고 늙어봐라. 함께 놀아본 기억이 없으면 그 때가 되면 비참해 진다”고 말한다. 뜨끔하다. 아이들과 함께 논다는 것은 함께 삶을 공유하는 일이다. 노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잘 놀아야지 잘 산다.

 

호이징하는 <호모루덴스>라는 책에서 “놀이는 문화보다 오래되었다. 놀이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며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해 왔고 다양하게 발전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 동시에 유희의 인간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하면서 인간의 모든 것들이 놀이의 법칙을 따르고 있고, 놀이의 요소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 세상이 죽도록 일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놀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호이징하는 말했다. “진정한 문명은 어떤 놀이 요소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중략) 문명은 항상 어떤 규칙에 따라 행해지는 놀이일 것이며 진정한 문명은 항상 페어플레이를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 노는 것은 바로 페어플레이를 전제로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어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수 있지만, 노는 것은 ‘페어플레이’를 요구한다. 놀기 위해서는 룰을 지켜야한다. 룰이 깨지면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이징하는 “놀이 행위가 선악의 영역 밖이기는 하지만, 긴장 요소는 그 놀이 행위에 대해 윤리적 내용을 부여한다. 이겨야하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법칙만은 따라야 하기 때문에 ‘공정성’의 정신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논다는 것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노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이다.

호모 루덴스가 온다!

 

나라는 늘 우리에게 놀이를 죄악시하고, 일을 권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놀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찾아나갔다. 구원받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무언가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80년대 해태 타이거즈에 매달린 광주와 호남사람들이 그렇고, 2002년 거리에 뛰쳐나온 젊은이들이 그러하다. 우리는 온 몸으로 놀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지고, 향유되는 원초적인 룰이다. 문화콘텐츠는 놀기 위해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주목할 것은 최근 인생은 노는 것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노는 것이 점차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고, 잘 노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호모 파베르가 지배하던 세상에 호모 루덴스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일상을 기록하며 노는 행위는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변화다. 매일 매일 자신의 일상을 찍어 편집해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올리는 이들은 호모 루덴스다.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나오면 언제라도 구매해야하는 얼리어댑터들도 바로 호모 루덴스들이다. 자전거 하나를 들고 대륙 횡단에 나서는 이들도 호모 루덴스들이다. 노래를 하기 위해 지하방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연습하고 녹음하는 이들도 호모 루덴스들이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낮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원고지와 마주하는 이들도 호모 루덴스들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밤이면 비디오를 끼고 사는 이들도 호모 루덴스들이다. 게임이 좋아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죽어라 연습하는 이들도 호모 루덴스들이다.

 

그들에게 왜 이 길을 선택했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재미있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놀고 있다. 노는 것이 좋고, 재미있는 것이 좋다. 새로운 인간형, 바로 호모 루덴스다. 우리는 놀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놀이는 문명을 만들고 나의 창의성을 빛나게 한다.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있고,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의 머리는 반짝반짝 빛을 낸다.

 

프로페셔널이 되기 이전, 풋풋한 아마추어의 판은 모든 것이 아름다운 호모루덴스들의 세상이다. 호이징하는 이야기한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나뉘게 되면서부터 스포츠는 놀이 영역을 떠나고 있다. 프로페셔널의 정신은 놀이의 정신이 아니다. 지나치게 진지해져 순수한 경기들이 오염됐고, 기술적 조직과 과학적 완전성이 극도에 달하며 놀이와 결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땅의 수많은 아마추어들은 풋풋한 창의성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간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우리 함께 놀자!

 

 

 

 

글_박인하_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만화평론가

삽화_이나래_만화작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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